반응형 전체 글148 일제시대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과 조선 공산당 창건 과정 1)사회주의 수용의 배경 ①사회경제적 조건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한국에서 펼친 초창기 경제정책은 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경제를 자국의 재생산체계 순환 속으로 편입시키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먼저 식민지 한국에 근대적 토지소유권제도를 확립시켰다. 그러나 근대적 토지소유권 아래에서 종래의 지주제는 온존되고 식민지 통치당국의 보호 하에 더욱 강화되었다. 그로 인해 지주계급이 한국사회 내부의 보수적 지배력을 여전히 장악할 수 있었다. 농민과 도시 소상공업자들은 끊임없이 파산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은 일제 독점자본의 식민지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소경영의 안정화를 보장할 수 있는 조건들을 박탈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민 가운데서 빈농층이 70~80%를 점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 2020. 4. 12. 조선시대의 가뭄 및 대처방법 1. 가 뭄 ‘수한(水旱)은 하늘이 하는 일이고, 갈고 씨 뿌리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인사(人事)를 닦고 천시(天時)를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이다’ -『태종실록』 11/06/17(병오)- ■ 가뭄기록 『조선왕조실록』중 태조부터 순종(1392∼1910)까지 가뭄에 대해 검색한 결과, △가뭄 3천173건 △한발(旱魃) 93건 △한해(旱害) 63건 △기아 118건 △흉년 5천948건 △한재(旱災) 1천766건 △기근 1천657건 등 총 1만2천800여 건의 자료가 검색되었다. 검색기록을 보면 세종·성종·중종·효종·현종·영조·정조 시기에는 기록이 많이 있으며(이들 왕들의 제위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조선후기인 순조·헌종·철종 시기에는 비교적 기록 수가 그 이전에 못 미친다. 해를.. 2020. 4. 11. 조선시대의 물시계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후 새로운 표준시계가 요청되어, 태조 7년(1398) 5월 종로에 종루(鐘樓)가 세워지고 경루(更漏)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최초로 제작된 누각인 경루는 고려 말에 사용된 부루(浮漏) 또는 부전(浮箭)과 같은 유입형(流入型) 물시계였을 것이며, 16년 원(元)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두자성(杜子盛)이나 세운행(洗運行)과 같은 유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 물시계에 의하여 사진(司辰)이라는 서운관 관리가 종루에 걸어 놓은 대종(大鐘)을 쳐서 경점(更點)을 알렸다. 당종법(撞鐘法)은 초경(初更)에는 28수(宿)의 수에 따라 28회를 울렸고, 오경(五更)에는 33천(天)에 따라 33회를 울렸는데, 전자를 인경[人定]이라 하여 이 시각에 성문을 닫았으며, 후자를 바라[.. 2020. 4. 10. 프랑스 68혁명 대학생과 노동자의 연합 1954년에 발발해 1962년 에비앙 협정을 통해 종결된 알제리 전쟁은 1956년 3월 기 몰레(Guy Mollet) 정부가 선포한, 알제리 파병을 위한 징병령이 시행되기 이전까지 프랑스인들에게 ‘전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본토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에게 알제리는 여전히 먼 곳에 위치하는 일개 도(departement)에 불과한 식민지였다. 하지만,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였던 알제리 프랑스를 상실한다는 것은 더 이상 프랑스가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였고, 알제리 전쟁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대립은 격화되었다. 군대 의무 복무 기간은 18개월이었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에 연장되었고, 1962년까지 알제리 전쟁에는 약 120만 명의 20세 이상 .. 2020. 4. 9. 이전 1 ··· 31 32 33 34 35 36 3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