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전체가 하나님 중심(God-Centered)의 세계이다.
책의 제목처럼 적어 놓은 비전이 고대로 다 달성된 것을 보여 주려고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1999에 발간한 「Write the Vision—It Will Surely Come」책의 속편이다. 1957년(26세)에 적어 논 이 박사의 비전들이 어떻게 달성했는지를 증명하는 과정이 이 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역사를 전공하였기 때문에 세계사의 흐름과 특별히 국내 정치 흐름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사건, 사고, 정책들과 관련을 지어 기록하였다.
이 책은 이 박사가 평소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리스트와 또 그분들에 대한 칭찬까지 적어 놓은 이 박사의 인명사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운전기사까지도 야간 신학교에 다니도록 하여 대학 행정실에서 일하도록 배려하시는 분이니 제자들을 챙기는 일에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6ㆍ25전쟁으로 피난 당시 공산당의 총살현장에서 도망하여 구사일생 살려주신 하나님과의 약속한 대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일관된 하나님 중심의 신앙고백서이다.
미리 적어 논 비전과 달성된 성과와의 비교표
⑴1960(29세) Ph.D를 취득하고 ⑵1961-67(31-37세) 대학의 조교수 ⑶1968-71(38-41세) 미국 교환교수 ⑷1972-79(42-49세) 정교수 ⑸1980-84(50-54세) 대학의 학장 ⑹1985-91(55-61세) 대학원 원장 ⑺1992-1999(62-69) 대학의 총장 ⑻2000(70세) 은퇴 |
① 30세에 Ph.D (기록보다 1년 늦었음) ② 30세에 경희대학교의 조교수 ③ 34-35세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④ 36-38세 Adrian 대학 역사학 교수 ⑤ 39-43세 경희대학교 정경대학장 ⑥ 46-49세 경희대학교 대학원장 ⑦ 50-52세 경희대학교 부총장 ⑧ 54-61세 한남대학교 총장 |
결론적으로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기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종이에다가 SMART (specific, measurable, attainable, realistic and tangible)원칙에 의해 적고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정성을 다하노라면 반드시 그 목표가 다 달성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길인가를 먼저 물었다.
귀국하기 전 경희대학에 약속을 받아 놓았지만 5ㆍ16군사혁명이 일어나고 군사정부가 사립대학에 회계부정 감사를 실행한다며 대학 설립자 조영식 박사의 직을 박탈하는 바람에 곤경에 빠지게 되었을 때도 그는 기도를 하였다. 다행히 조영식 박사가 혐의를 벋게 되자 다른 교수들의 질투를 받을 정도로 조 총장의 신임을 얻게 되고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교육부 권오병 장관이 검사시절에 경희대 특강을 나왔다가 이박사의 소문을 듣게 된 것이 동기가 되어 34세에 젊은 나이에 교육부 고등교육국장으로 발탁되게 된 것이다. 이 박사는 총신대학이 정부 인가와 한국장로교 신학대학교가 대학원 인가를 받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1973년 KBS에서 유신헌법에 대한 찬성연설 요구에 피신하여 다니다가 마침내 벨기에 Louven 대학의 초빙교수로 가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하고 있다.
그는 젊음과 재능을 경희대학과 함께 하였다.
32세에 경희대학교 도서관장으로 임명을 받아 획기적으로 도서를 구입하고 확장하는 일을 신나게 벌였다. 더군다나 조영식 총장의 뜻에 따라 국제대학 총장협의회의를 구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조 총장이 50여 개국 800여 대학 총장의 모임인 IAUP 회장이 되었을 때는 사무총장으로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였다. 39세에 정경대학 학장, 국제교류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많은 학생을 미국과 필리핀에 보냈으면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외국에서 학위를 얻은 제자들이 생겨났다. 또한, 경희대학교의 한의학 박사과정을 설치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1980년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대신할 개혁을 내세우면서 61년 박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모든 사립대학의 설립자들을 현재의 행정직에서 정지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은 당시 50세인 이원설 박사에게 총장직을 강권하였으나 사양하고 대신 안치열 박사를 추천하고 자신은 부총장 직을 맡는다. 총장직에서 물러난 8년 동안 조영식 학원장은 국제 평화연구소를 설치하고 밝은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하늘나라에 함께 갈 때까지 경희대에 머무르기로 조영식 총장과 굳게 약속을 했었지만 경희대 교내 사정에 의하여 젊음을 다 바친 경희대학교를 떠나게 된다. 교원대학교 창설에 관계도 하였지만 기독교대학인 한남 대학으로 옮기게 된다.
한남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켜 초대 총장이 되었다.
한남대학 학생들의 요구가 종합대학을 요구하며 데모를 벌이고 있었을 당시에 한남대학 책임을 진 이 박사는 29개 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종합대학 승인을 얻어낸다. 배경에는 교육부 고등교육국장을 한 경험과 절친한 교육부장관을 하다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규호 박사와 교육담당 비서관 신극범 박사 등 이 박사 개인적인 인맥이 크게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1978년에 이란정부의 국가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한남대학교의 건학정신인 신앙, 진리, 봉사의 정신을 구현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매주 월요일 교사 경건회를 가지며 기독교 대학의 사명을 다하고자 성서와 과학이란 과목을 개설하고 신앙과 학문의 통합교육을 하였다. 경희대학교를 모델로 학생회관 등 여러 건물을 건축하고 교내 조경에 힘을 쏟았다. 장기 대학발전 계획 수립하여 기독교 대학의 모델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세계의 중심이 태평양으로 이동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본, 중국, 한국, 시베리아를 담당하는 IAUP 북아시아 회의의 의장으로 활약을 하였다.
동서양의 유명한 학자들과 국내외 인사들과 폭 넓은 교제를 가지신 분이다.
이 박사가 주로 경희대학교에서의 교수활동과 세계대학총장회의 사무총장으로서의 역할과 한남대학교의 총장으로 활동한 내용이 두드러져 있다.
세계 대학총장회의 사무총장을 하면서 세계대학 총장들과 교분을 쌓아나갔다. 1976년부터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기독교 지도자 훈련을 위한 Haggai Institute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1979년에 제자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리더십연구원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보충하여야 할 것으로는 현재 14년간을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한국기독교학교학교 연맹의 활동, 아세아태평양 기독교학교연맹을 창설한 회장으로 역할, 중앙교육심의회 의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활동, 매월 세미나를 개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21세기 크리스천 연구위원회 회장의 업적을 보충하는 속편이 나와야 할 것이다.
작가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책 머리에 아내와 이별하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책을 생생한 대화형식으로 꾸몄기 때문에 지루한 감이 없다. 언제나 책 머리에 의문문으로 시작하든지 하면서 우선 독자들의 관심을 끌 문장으로 시작을 한다. 이 박사가 1950년 연세대학에 입학(95년 명예 학사 취득)하면서 작가로 성공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영문 저서 23권과 우리말 저서 16권, 소책자 17권을 발행하였다. 그는 2002년 제2회 한국기독교학술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1976부터 22년간 Korea Herald에 주간 칼럼을 썼으며, 그 칼럼들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쓴 귀중한 자료들로서 그 중 몇 편이 이 책에도 인용되고 있다. 앞으로 누군가가 소설 이원설을 써 보면 어떨 가한다.
자녀 손들이 자기 일에 충실한 것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이다.
초대 주미 장학관으로 파견되면서 Adrian대 역사학 교수로, Long Island 초빙교수로 활동하게 되어 자녀도 미국에서의 공부혜택을 받게 되었다. 벨기에 Louven대 초빙교수 시절에는 이웃나라 영국, 이탈리아, 바티칸 등 여러 나라여행은 견문을 넓이며 역사학자로 르네상스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여행을 통해 부부애를 돈독히 하는 즐거운 기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 박사는 부인 박은희 여사를 재정을 비롯한 모든 일을 총괄하는 Perfect manager라고 칭찬하고 있다. 사실 부인은 시부모를 모시는 일에도 정성을 다하였다. 2남 2녀의 자녀도 치과의사, 약사, 교수, 의사로 배우자들도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교수, 사회사업가 등 전문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삼성재단에서 매년 연간 5만 불의 장학금을 받는 손자를 비롯하여 9명의 손자 손녀가 다 공부를 잘하고 있다.
이 박사는 올해 76세로 결혼 54주년이라고 한다. 앞으로 6년이면 결혼 60주년인 회혼례를 맞게 된다. 미리 축하를 드립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 중심의 삶이었지만 앞으로의 삶은 가나의 혼인 잔치처럼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는 칭찬을 듣는 더욱 보람 있는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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